문단 (context)
조선을 대표하는 인물을 만나기 위해서는 어진동을 찾아야 한다. 효종과 현종, 숙종 등 3대 임금에 걸쳐 재야와 조정의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개혁사상가이자 호서유림의 거두인 초려 이유태 선생이 주인공. 이유태 선생의 신도비와 묘역은 어진동 일원에서 만나볼 수 있다. 야트막한 구릉에 수목이 둘러싼 묘역은 여전히 그 주변에 살고 있는 후손들이 정성스레 관리하고 있고 묘역 근처에는 고종 20년에 세워진 신도비가 고고한 자태로 대학자였던 이유태 선생의 높은 학문을 가늠케 한다. 특히 신도비가 세워진 인근의 길이 오래 전 호남 유생들이 과거를 보기 위해 한양으로 가던 길목이라 한다. 한편, 세종대왕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던 김종서 장군의 묘역 또한 세종시에 위치하고 있다. 세종 때부터 3대에 걸친 충신이었던 김종서 장군은 수양대군에 의해 계유정란의 첫 번째 희생자가 되었고, 그의 애마가 물고 온 장군의 다리 하나를 마을 사람들이 묻은 곳이 바로 지금의 세종시 장군면에 위치한 김종서장군묘이다.
기계독해 질의응답 4건
| question_id | 질문 | 답변 불가 | 정답 |
|---|---|---|---|
| 1083393 | 이유태 선생의 묘역과 신도비가 있는 곳은 어디지 | 가능 | 어진동 |
| 1083394 | 이유태 선생의 묘지와 신도비는 어디에 위치해 있어 | 가능 | 어진동 |
| 1083395 | 어디에 이유태 선생의 공적이 기록된 비석과 묘소가 있니 | 가능 | 어진동 |
| 1083396 | 김구 선생의 서원과 신도비는 어디로 옮겨졌을까 | 불가 | 어진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