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 (context)
고려시대에도 화엄사는 자장율사와 도선국사에 의해 중건과정을 거치며 번성했다가 조선시대에 들어와 임진왜란 때 모두 소실됐다. 임진왜란 때문에 많은 문화유산을 후손들이 볼 수 없게 됐다는 걸 생각하면 안타깝다. 다행히 화엄사는 1636년(인조 14)에 다시 중건 됐다고 한다. 덕분에 현재까지 후손들은 최대 규모의 목조건물로 인정받는 각황전과 세련되고 우아한 조각이 아름다운 사사자 삼층석탑(국보 제35호), 각황전 앞 석등(국보 제12호), 각황전 안의 영산회괘불탱(국보 제301호) 등 국보 4점과 대웅전(보물 제299호), 화엄석경(보물 제1040호), 동·서 오층석탑(보물 제132·133호) 등 보물 4점 등을 간직한 현재 모습을 볼 수 있다. 유교 사상을 근본이념으로 내세웠던 조선에서 화엄사 중건을 하지 않았을 경우를 상상해 보면 후손들은 국보와 보물로 빛나는 문화재와 천연기념물 제38호인 올벚나무를 볼 수 없었을 것이며, 일몰 전 고즈넉이 지리산 자락을 울리는 아름다운 타종소리도 듣지 못했으리라.
기계독해 질의응답 4건
| question_id | 질문 | 답변 불가 | 정답 |
|---|---|---|---|
| 1305365 | 화엄사는 언제 다시 중건되었지 | 가능 | 1636년 |
| 1305366 | 언제 화엄사가 다시 보수되었는가 | 가능 | 1636년 |
| 1305367 | 화엄사가 다시 지어진 건 언제야 | 가능 | 1636년 |
| 1305368 | 경복궁이 다시 중건된 것은 언제니 | 불가 | 1636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