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 (context)
함양이 선비의 고장임을 재차 증명하는 것은 규모와 명성을 가진 서원과 향교의 건재함이다. 그 가운데 남계서원(사적 제499호)은 경북 영주의 소수서원에 이어 조선에서 두 번째로 창건됐다고 알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 때도 훼철되지 않은 47개 서원 중 하나로 유서가 깊다. 바로 이웃에는 청계서원이 있는데, 선비들의 학문에 대한 열정이 얼마나 깊었으면, 바로 이웃에 서원을 건립해 학풍을 드높였을까 싶다. 향교의 존재는 고을의 향풍 진작을 가늠하는 하나의 잣대이다. 한 고을에 향교가 하나만 있어도 문풍이 깃든 아름다운 고장이라 일컬을 수 있는데, 함양에는 함양향교와 안의향교 등 큰 향교가 두 개나 있다. 함양향교는 고려 때 경학을 가르치던 곳인 소소당(昭所堂)을 이어 조선 태조 때 창건된 아주 오래된 교육기관이다. 안의향교는 그 후 조선 성종 때 만들어졌다고 한다. 지방에서 성균관을 대신하여 지방대학의 역할을 했던 향교가 한 지역에 이렇게 성행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지역민들의 풍속교화와 학문에 대한 요청이 강했기 때문이리라. 이런 열망이 함양을 교육의 고장으로 만드는 계기가 됐을 것으로 판단된다.
기계독해 질의응답 4건
| question_id | 질문 | 답변 불가 | 정답 |
|---|---|---|---|
| 1305917 | 조선시대 지방에서 성균관을 대신하여 지방대학의 역할을 했던 것은 뭐니 | 가능 | 향교 |
| 1305918 | 무엇이 조선시대에 성균관과 마찬가지로 지방에서 지방대학의 기능을 했을까 | 가능 | 향교 |
| 1305919 | 성균관처럼 조선시대에 지방에서 지방대학의 기능을 한 게 뭐야 | 가능 | 향교 |
| 1305920 | 무엇이 성균관처럼 고려시대에 지방에서 지방대학의 기능을 했지 | 불가 | 향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