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 (context)
비의 형태는 고구려 석비인 광개토왕릉비(廣開土王陵碑, 414년, 중국 길림성 집안시 태왕향 소재)에서 알 수 있듯이 초기에는 돌기둥 모양이 일반적이었으나,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러 중국의 영향 속에서 비몸돌(碑身)과 거북 모양의 비받침(龜趺) 그리고 비머릿돌(篾首)을 갖춘 전형적인 형식을 이루었다. 한편 비몸돌은 앞면을 비양(碑陽), 뒷면을 비음(碑陰)이라 했고, 비몸돌의 상단부 또는 비머릿돌의 중앙에 비의 명칭을 새기는데 이를 제액(題額) 또는 전서(篆書)로 쓴다 하여 전액(篆額)이라 불렀다. 비문은 산문 형식의 서(序)와 운문으로 된 명(銘)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렇게 , 서와 명을 갖춘 비를 비명(碑銘)이라고도 부른다. 비는 내용에 따라 묘비(墓碑)·탑비(塔碑)·사묘비(祠廟碑)·사적비(事蹟碑)·유허비(遺墟碑)·송덕비(頌德碑) 등으로 갈라진다. 왕권이 확립된 시대의 왕릉비(王陵碑), 불교가 성행되었던 시대의 고승 부도탑비(浮屠塔碑), 제사를 지내는 지역의 신성함을 알리는 신사비(神祠碑)나 국경 순수 후에 세운 척경비(拓境碑)와 순수비(巡狩碑) 등 다양하게 확인된다.
기계독해 질의응답 4건
| question_id | 질문 | 답변 불가 | 정답 |
|---|---|---|---|
| 1009921 | 무엇이 고구려의 석비이며 초기에는 돌기둥 모양이었지 | 가능 | 광개토왕릉비 |
| 1009922 | 고구려의 석비인 무엇이 초기에는 돌기둥 형태이었니 | 가능 | 광개토왕릉비 |
| 1009923 | 고구려의 돌로 만든 비석이며 처음에는 무엇이 돌기둥 모양이었을까 | 가능 | 광개토왕릉비 |
| 1009924 | 백제의 석비이며 초기에는 돌기둥 모양이었던 것은 뭐야 | 불가 | 광개토왕릉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