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 (context)
북한은 1970년대에 들어와서도 초반까지는 남조선혁명론에 기반한 대남정책을 계속 강하게 구사하였다. 물론 1970년대 초반의 국제적인 해빙 무드와 닉슨 독트린으로 분단 상황 속에서도 긴장 완화가 이루어지기도 했지만 북한은 간헐적으로 도발적 행동을 일으켜 남북관계에 갈등을 유발하였다. 대표적인 사건은 1976년 8월 18일에 발생한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이다. 당시 북한은 판문점 공동경비 구역에서 나뭇가지 치기 작업을 하던 유엔군 소속 미군 장교 2명을 도끼로 살해하고 한국과 미국 병사 9명에게 중경상을 입히는 한편, 유엔군 트럭 3대와 초소를 모두 파괴하였다. 사건 발생 후 주한 미군사령부는 전투준비 태세 명령(데프콘3)을 내렸으며, 오키나와 등지의 전폭기 대대 및 해병대를 한국에 급파하고 항공모함 레인저호와 미드웨이호를 한국 해역으로 이동시키는 등 강경한 대응태세를 취하였다. 한미 양국의 강경한 태세에 북한의 김일성은 8월 21일에 유엔군 사령관에게 사과 메시지를 보냈다.
기계독해 질의응답 4건
| question_id | 질문 | 답변 불가 | 정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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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45917 | 1970년대 초반까지는 남조선혁명론에 기반한 대남정책을 계속 강하게 구사한 건 누구야 | 가능 | 북한 |
| 1145918 | 남조선혁명론에 기반한 대남정책을 1970년대 초반까지 끊임없이 구사한 건 누구지 | 가능 | 북한 |
| 1145919 | 대남정책인데 남조선혁명론에 기반한 것으로 1970년대 초반까지 강하게 구사한 건 누구지 | 가능 | 북한 |
| 1145920 | 북조선혁명론에 기반한 대남정책을 1960년대 초반까지 끊임없이 계획한 건 누구지 | 불가 | 북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