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 (context)
남북대화는 1971년 8월 20일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위한 적십자회담의 파견원 접촉이 성사되면서 시작되었다. 1971년 8월 12일 대한적십자사는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위한 남북적십자회담을 북한에 제의하고 북한은 이에 동의하였다. 이를 계기로 이산가족들의 주소와 생사확인, 방문과 상봉, 서신왕래, 재결합, 기타 인도주의적 문제 해결 등 5개 항을 의제로 해 1972년 8월부터 다음해 7월까지 남북적십자 본회담이 7차례 개최되었다. 한편 1972년 5월 2일부터 4일간 남과 북 대표는 평양과 서울을 오가며 회담을 가졌다. 그 결과로 「7.4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 었고, 남북조절위원회가 발족되었다. 남북조절위원회 회의는 세 차례의 공동위원장회의, 세 차례의 남북조절위원회 본회의와 함께 세 차례의 간사회의가 개최되었다. 그러나 북한은 1973년 8월 우리의 「6.23 특별선언」을 이유로 일방적으로 대화 중단을 선언하였다. 1979년 2월 17일부터 남북조절위원회 대표 간에 세 차례 접촉이 있었으나 냉전체제를 기반으로 한 적대적 대결구도라는 근본적인 제약을 극복하지 못함으로써 남북 간의 화해와 협력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기계독해 질의응답 4건
| question_id | 질문 | 답변 불가 | 정답 |
|---|---|---|---|
| 1145969 | 1971년 8월 12일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위한 남북적십자회담을 제의한 곳이 어디야 | 가능 | 대한적십자사 |
| 1145970 | 이산가족 문제 해소를 위해 1971년 8월 12일 남북적십자회담을 제의한 곳이 어디지 | 가능 | 대한적십자사 |
| 1145971 | 어디에서 1971년 8월 12일에 남북적십자회담을 건의했어 | 가능 | 대한적십자사 |
| 1145972 | 어디에서 이산가족 문제 심화를 위해 1945년 8월 5일 남북적십자회담을 제의했을까 | 불가 | 대한적십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