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 (context)
여몽전쟁 당시 강화로 옮겨진 태조의 재궁은 다시 개경으로 돌아갔지만 지금까지 강화에는 고려의 왕릉이 남아있다. 이 곳으로 천도했던 고종의 홍릉을 비롯해 희종의 석릉, 원덕태후 곤릉, 순경태후 가릉 등 4기의 왕릉과 묻힌 이를 알 수 없지만 왕릉급이 분명한 석실분이 몇 기 있다. 우왕과 창왕, 공양왕 등 묻힌 곳을 정확히 알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 개경에 있는 고려 왕릉을 남한에서 볼 수 있는 곳은 강화뿐이다. 이는 강화도가 40여 년간 공식적으로 수도 개경을 대체한 또 하나의 고려 도읍지였기 때문이다. 고려 사람들은 강화를 강도(江都)라 했고 황도(皇都)로 인식했다. 홍릉을 제외하고 모두 발굴이 이루어졌는데 강도 왕릉의 구조와 규모가 개경의 그것과 같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미 대부분 도굴을 당했지만 질 좋은 자기와 구슬, 금동제 봉황문 장식 등 수준 높은 유물이 출토되어 강도의 위상을 보여주고 있다.
기계독해 질의응답 4건
| question_id | 질문 | 답변 불가 | 정답 |
|---|---|---|---|
| 990165 | 강화도는 언제동안 공식적으로 고려의 도읍지였어 | 가능 | 40여 년 |
| 990166 | 몇 년 동안 강화도가 공식적으로 고려의 수도였니 | 가능 | 40여 년 |
| 990167 | 강화도가 국가적으로 규정된 고려의 도읍지였던 건 몇 년 동안이야 | 가능 | 40여 년 |
| 990168 | 몇 년 동안 경주가 공식적으로 신라의 수도였지 | 불가 | 40여 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