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 (context)
왕실발원 순금화의 제작은 17세기에 접어들어 선조(재위 1567~1608)가 사림을 등용하여 유교적 정치 질서를 구현하면서 쇠퇴했다. 선조는 종실과 관료들이 자유로운 문예활동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함과 동시에 감상을 위한 이금화를 제작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권장했다. 특히 왕실의 고급문화를 향유할 수 있었던 종실화가들은 이금산수화나 이금화조영모화 등 자신들이 능한 분야를 제작하였다. 이들이 그린 이금화는 거의 현존하지 않아 정확한 예술세계를 파악할 수 없지만, 다행히 종실화가인 이정이 그린 묵죽과 매난 그림이 남아 있다. 이정이 1594년에 그린 <삼청첩(三淸貼)>은 최립의 서문과 한호의 서예가 더해져 왕실과 문인사대부들에게 감상되면서 풍류와 아취를 담은 작품으로 인정받았다. 왕실과 사대부들이 이정의 그림에 열광한 이유는 그의 이금죽이 지닌 예술적인 역량이 뛰어난 것도 있지만 잦은 전란으로 무너진 속(俗)과 아(雅)라는 계급간의 차이를 구분하고자 한 의도도 작용했다. <삼청첩>은 이금으로 그렸지만 불화가 지닌 종교적인 상징과는 무관한 순수한 감상용 회화라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이런 배경 속에서 이금산수화가 인조(재위 1623~1649) 때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했다.
기계독해 질의응답 4건
| question_id | 질문 | 답변 불가 | 정답 |
|---|---|---|---|
| 990129 | 최립의 서문과 한호의 서예가 더해져 풍류와 아취를 인정 받은 이정의 그림이 뭐지 | 가능 | 삼청첩 |
| 990130 | 이정이 그린 것으로 최립의 서문과 현호의 글씨가 더해져 멋과 아취를 갖춘 그림이 뭘까 | 가능 | 삼청첩 |
| 990131 | 이정의 그림으로 최립이 쓴 머리글과 한호의 글씨가 더해져 멋과 아취를 인정 받은 것이 뭐니 | 가능 | 삼청첩 |
| 990132 | 고흐가 그린 것으로 아를의 멋진 풍경이 더해져 멋과 아취를 갖췄다고 여겨지는 그림이 뭘까 | 불가 | 삼청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