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 (context)
인조는 이징을 매우 총애하여 정묘호란을 겪었던 1627년에도 그를 입궐시켜 곁에서 그림을 그리게 함으로써 신하들의 원성을 샀다. 그러나 신하들의 원성은 반영되지 않았고, 병자호란이 발생한 지 2년 후인 1638년에도 역시 이징을 불렀다. 그러자 간원(諫院)이 상차(上箚)를 올려 ‘삼가 전하께서는 남한산성의 일을 잊지 말아 하늘의 경계를 삼가고 연못에 다다른 듯 얇은 얼음을 밟는 듯 날마다 조심하라’는 말로 직언을 했지만 인조는 결코 자신의 의지를 꺾지 않은 듯하다. 「인조실록」에는 인조가 세상을 떠나기 한 해 전까지 비슷한 상소가 몇 차례 더 적혀 있기 때문이다. 인조가 그토록 이징의 이금산수화에 집착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어쩌면 갖은 수모를 다 겪은 왕으로써 그림을 통해서 나마 실추된 권위를 회복하고자 한 욕망의 반영이었을지 모른다. 반대로 말하면 절대적이지 않은 권위를 들키고 싶지 않은 불안과 초조함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인조의 뜻에 부합하기라도 하듯 이징의 이금산수화는 거칠고 성근 김명국의 작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고 화려하다. 이금산수화는 불화에 쓰던 이금이란 안료를 감상용 회화에 사용함으로써 그 안료가 지닌 권위와 상징성을 시각화하였다는데 의의가 있다.
기계독해 질의응답 4건
| question_id | 질문 | 답변 불가 | 정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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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90137 | 인조가 총애하여 정묘호란 중에 곁에서 그림을 그리게 하여 신하들의 원성을 산 화가는 누구니 | 가능 | 이징 |
| 990138 | 신하들의 원성에도 불구하고 정묘호란 중에 인조가 곁에서 그림을 그리게 한 사람은 누구지 | 가능 | 이징 |
| 990139 | 인조가 신하들의 원망을 무릅쓰고 정묘호란 중 옆에서 그림을 그리게 한 화가는 누구일까 | 가능 | 이징 |
| 990140 | 인조가 신하들의 추천으로 정묘호란이 끝난 후 곁에서 그림을 그리게 한 화가는 누구야 | 불가 | 이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