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 (context)
인조는 광해군을 몰아내고 반정을 통해 왕위에 올랐는데 보위에 오른 직후부터 재위 기간 내내 수 많은 내우외환에 시달려야 했다. 즉위한 다음 해에는 이괄의 난(1624)이 일어났고, 곧이어 정묘호란 (1627)과 병자호란(1636을 겪었다. 정묘호란 때는 백성들을 적에게 내주고 강화도로 피신을 가서 공분을 샀고, 병자호란 때 역시 강화도로 도망을 가려다 길이 막혀 남한산성으로 피신을 했다. 결국 인조는 청나라 태종에게 항복을 선언하고 삼전도에 내려와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를 행하는 수모를 겪으면서 왕권은 완전히 바닥에 떨어졌다. 이징이 그린 <이금산수화>는 이때 등장한다. 이징은 이경윤의 서자로 왕실과 사대부들을 위한 이금산수화를 제작했다. 이징은 주문층의 취향에 따라 화풍을 달리하여 보수적이고 전통성이 강한 이금산수화를 그렸다. 즉 왕실에 진상할 그림으로는 조선의 원체화풍과 명대 궁정화법을 결합한 대형 이금산수화를, 사대부들을 위해서는 절파화풍으로 비교적 간단한 화첩이나 선면에 이금산수화를 그렸다.
기계독해 질의응답 4건
| question_id | 질문 | 답변 불가 | 정답 |
|---|---|---|---|
| 1304165 | 인조는 정묘호란 때 어디로 피신을 가서 공분을 샀니 | 가능 | 강화도 |
| 1304166 | 정묘호란 때 어디로 도망가서 인조는 공분을 받았지 | 가능 | 강화도 |
| 1304167 | 후금의 조선에 침입했을 때 인조는 어디로 달아나서 공공의 분노를 받았어 | 가능 | 강화도 |
| 1304168 | 임진왜란 때 어디로 출진해서 인조는 공분을 받았을까 | 불가 | 강화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