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 (context)
1992년 10월 왕릉을 고치는 과정에 현릉 봉분 북쪽 5m 지점의 구덩이 속 화강암 판석 아래에서 청동상과 옥띠장식 등이 발견되었다. 약 140cm 높이의 이 좌상은 태조 왕건을 형상화한 것으로 왕건상이라 불린다. 왕건상은 황제의 관인 통천관(通天冠)을 쓰고 있으며 나신(裸身) 위에 비단옷을 입고 금동과 옥 장식의 허리띠를 패용했다. 이는 고려가 황제국을 표방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황제의 보관을 쓴 태조의 상(像)이 현릉 옆 구덩이에 묻혀 있던 이유는 고려의 흥망과 관계가 있다. 왕건상은 광종 연간(949~975 재위)에 제작되어 태조의 진전사원인 개경 봉은사에 오랫동안 숭배의 대상으로 모셔져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고려가 망한 이후 더 이상 개경에 머물 수 없었기 때문에 지방으로 옮겨 졌다가 세종 때 이곳에 묻혔던 것이다. 옛 왕조의 자취를 폐기해야 하지만 태조의 상징물을 그냥 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수록된 문신 성임(成任)의 시에는 이미 망해버린 왕조의 태조 현릉이 다음과 같이 묘사되어 있다.
기계독해 질의응답 4건
| question_id | 질문 | 답변 불가 | 정답 |
|---|---|---|---|
| 1304217 | 문신 성임의 시가 수록된 서적이 무엇인가 | 가능 | 신증동국여지승람 |
| 1304218 | 문신 성임의 시를 어떤 서적에 담았지 | 가능 | 신증동국여지승람 |
| 1304219 | 어떤 책에 문신 성임의 시를 실었어 | 가능 | 신증동국여지승람 |
| 1304220 | 무신 성임의 시를 어떤 서적에서 비판했니 | 불가 | 신증동국여지승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