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 (context)
또한 나폴레옹은 대비하던 결전이 일어나지 않자 끝까지 적을 추격하여 섬멸을 추구했다. 사후, 자신의 전역을 평가하면서, 나폴레옹은 프리드리히(Frederick II)와 자신의 차이점은 결정적인 전투 이후에도 적이 완전히 패퇴할 때까지 연속적인 추격을 감행한 것이라고 강조하며, 울름에서 초기 전투가 순탄하게 종결된 이후에도 연속적으로 적을 추격하여 44,000명의 적을 추가로 생포했다는 점을 들었다(Colson, 2015, p. 199). 실제로 당시의 명령서에 의거하면 나폴레옹은 오스트리아군의 탈출이 차단된 10월 14일 이후에도 뮈라(Murat)를 통해 탈출한 적 일부병력에 대한 지속적인 추격을 명령했다(Colson, 2015, pp. 199-200). 하지만 클라우제비츠가 울름 전역을 예외 사례로 꼽은 이유는 이러한 사전 준비 및 ‘천재적’ 지휘를 통한 마찰요소의 최소화, 결전 시도와 같은 다양한 노력들도 울름의 승리를 궁극적으로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폴레옹 스스로도 울름의 승리요인을 병사들의 인내와 용맹성, 황제에 대한 신뢰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잘못된 계략으로 돌렸다(Colson, 2015, pp. 141-143, p. 195).
기계독해 질의응답 4건
| question_id | 질문 | 답변 불가 | 정답 |
|---|---|---|---|
| 1090645 | 나폴레옹과 프리드리히의 차이점은 무엇을 감행한 것에 있지 | 가능 | 연속적인 추격 |
| 1090646 | 무엇을 감행한 것이 나폴레옹과 프리드리히의 상이점일까 | 가능 | 연속적인 추격 |
| 1090647 | 프리드리히와 나폴레옹은 무엇을 감행한 것에 있어 차이가 있어 | 가능 | 연속적인 추격 |
| 1090648 | 나폴레옹과 엘리자베스의 차이점은 무엇을 감행한 것에 있지 | 불가 | 연속적인 추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