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 (context)
유교를 종교의 범주로 받아들인다면, 종교로서의 유교교육 즉 유교 종교교육과 보편적인 교육이념으로서의 유교교육과의 관련성을 심산이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실 유림계는 해방 이후 신국가 건설에서 전통사회의 교육이념이었던 유학(유교적 교학이념)의 위상을 어떻게 설정할 것이며, 성균관의 종래의 교육기능을 부활시키면 그 성격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했어야 했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근대 학교교육 체제에서 공교육은 국가나 사회의 보편적 교육이념을 추구하여, 학교 설립 운영자의 특수한 교육이념이나 종교교육을 지향하는 것에 대해서는 허용적이지 않았다. 교육기관 설립과 운영에서 기독교를 비롯한 종교단체의 근대적 학교교육기관 운영과 종교와 교육의 관계 등에 대한 철저한 이해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심산은 성균관대학 설립 및 운영 이전부터 유교 교육기관에서 문묘향사 기능을 지나치게 강조하거나 유림들이 문묘향사의 의례 중심으로 활동을 하는 것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심산은 1917년 경북 도내의 유림들이 모여 고산서당에 대산 이상정(李象靖)의 사당을 짓고 제사 지내려하자 다음과 같은 반대 의견을 개진한 적이 있다.
기계독해 질의응답 4건
| question_id | 질문 | 답변 불가 | 정답 |
|---|---|---|---|
| 1122513 | 유림들이 문묘향사의 의례 중심으로 활동을 하는 것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사람은 누구지 | 가능 | 심산 |
| 1122514 | 누가 문묘향사의 의식 중심으로 유림들이 행동하는 것에 대해 비평적이었어 | 가능 | 심산 |
| 1122515 | 유림들이 문묘향사의 예식에 중점을 두고 활동하는 것을 비판한 사람은 누굴까 | 가능 | 심산 |
| 1122516 | 개화파들이 근대적 학교교육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것에 대해 긍정적이었던 사람이 누구야 | 불가 | 심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