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 (context)
대한적십자사 최두선 총재는 1971년 8월 12일 특별성명을 통하여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위한 남북적십자회담을 제의했었다. 이에 대한 답신으로 북한 적십자중앙위원회 손성필 위원장이 호응함으로써 8월 20일 판문점 중립국감독위 회의실에서 남북적십자 간 첫 회담을 개최한 이래 모두 20여 차례의 예비회담이 진행되었고, ‘5개항 의제’에 합의했다. 그러나 실질적 진전과 상봉은 없었다. 그리고 1985년 5월 27일부터 30일까지 4일간 개최된 남북적십자회담을 통해 9월 23일부터 8일간 ‘이산가족 고향방문단과 예술공연단’의 교환방문이 분단 40년 만에 처음으로 추진되었다. 그러나 제8차 남북적십자 실무대표접촉(1989년 11월 21일)에서 북한이 ‘혁명가극’ 공연을 주장하면서 2차 고향방문단 교환이 무산되었고, 3년 후인 1992년에 ‘이산가족 노부모 방문단 및 예술단’ 방문 합의를 이루었으나 북측의 일방적인 거부로 무산되고 말았다. 1998년에도 ‘남북 차관급 회담’을 통하여 우리 측이 이산가족과 비료지원 문제를 병행하여 협의하려 했으나 북측의 ‘선(先)비료지원 요구’로 무산되었다.
기계독해 질의응답 4건
| question_id | 질문 | 답변 불가 | 정답 |
|---|---|---|---|
| 929057 | 1971년 남북적십자회담을 제의했던 대한적십자사 총재가 누구야 | 가능 | 최두선 |
| 929058 | 남북적십자회담을 1971년 제안했던 대한적십자사 총재의 이름이 뭐야 | 가능 | 최두선 |
| 929059 | 누가 1971년에 남북적십자회담을 열자고 했어 | 가능 | 최두선 |
| 929060 | 1991년 혁명가극 공연을 주장했던 대한적십자사 총재가 누구야 | 불가 | 최두선 |